글쓴이 : 홍의범
상상할 수 있는가? 산속에서 마땅한 집도 없이, 옷도 입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으며, 대화할 사람 한 명 없이 그저 산에 사는 야생동물과 공생하고, 교감하는 삶을. 그러나 이 불가능해 보이는 삶을 산 사람이 있다. 내가 만난 이 사람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산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진짜 자연인이었다.
나는 이십 대 중반부터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날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연립촌에서 이 주인공을 만났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원룸으로 된 작은 아파트로 그는 옥상층에 살고 있었다. 그는 야성미가 넘쳐흘렀고 신체 건장한 사십 대 후반쯤 되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날 감사하게도 이 주인공의 인생 역경 드라마를 듣게 되었다. 나는 듣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야기는 이십 대 중반인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어느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는 말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말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부모나 동네 사람들은 그를 농아인으로 생각했다. 농아란 청각장애인, 그리고 언어장애인을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말을 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는 커가면서 부모로부터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살았다고 했다. 그의 부모는 수시로 그에게 '나가서 죽어라, 말도 못 하는 XX' 등의 온갖 욕을 퍼부었고, 그에게 하루하루는 그저 버텨야만 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하루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로부터의 사랑을 먹고살아야 하는 게 마땅하거늘 그는 부모로부터 천대를 받았으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고 사느니 가출하기로 결심했다. 그저 그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 어린 나이에 길을 헤매고 또 헤매고 다니다가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한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의 인상이 너무나도 좋았고 자신에게 밝은 미소로 웃어주는 그 모습에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아주머니만 따라간다면 사랑을 받고 살 수 있을 거야.' 이 생각 하나로 그는 아주머니를 끝까지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버스가 왔고 그는 그 아주머니를 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그 아주머니가 버스에서 내리자, 그도 따라 내렸다. 그 아주머니는 따라오는 그를 보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 아주머니의 눈에 그는 누가 봐도 집을 나온 어린아이였다. '너의 집이 어디니? 집에 데려다줄게.' 그렇게 그 아주머니는 그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줄 거라는 그 마음으로 잡았던 그 손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아주머니는 반대쪽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무서웠다. 다시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아주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힘을 다하여 도망쳤다. 잡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아주머니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는 걷고 또 걷고 또 걸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을 맞아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작은 손의 어린아이가 세상에서 자신의 손 하나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는 아무도 없는 산을 선택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그곳을 향해 그는 걷고 있었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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