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제주의 정(情)
4부
어머니는 리장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 소는 우리가 키울 뿐 우리의 소가 아니라고. 아버지의 제자가 ‘맵소’로 가져온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현재 우리에게는 농부들에게 피해보상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소를 놓고 가면 기존에 소를 받았던 아버지의 제자에게 보상해야 하는데 그런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리장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마을 사람들이 다 잠들고 난 시간에 소를 몰래 끌고 가라고 제안했다. 잘 데리고 가는 것만 생각하고, 그 외의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하면서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잘 둘러대겠다는 말과 함께. 너무나 고마운 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늦은 밤에 소를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었다. 또한, 잘 곳도 필요했는데 우리에겐 소까지 있었다. 우리는 리장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집을 찾을 수 있었는데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문을 열고 나와 주신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우리의 사정을 솔직하게 말했고, 다행히도 집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위해 방을 내주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잘 시간에 소를 끌고 와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것 역시 허락을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따뜻한 정이 사라져 가는 지금 시대가 참 안타깝다.
아침이 되었고, 집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위해 아침밥까지 해주었다. 심지어 점심 도시락까지 쌓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소가 있기에 버스를 이용하지 못했고, 이틀이 넘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틀 밤을 자기 위해서 방도 얻어야 했다.
당시 시골 마을에는 여관이라는 것이 없었기에 우리는 밤이 되면 개인 집을 찾아야 했는데, 처음 문을 두드린 집 모두 두말없이 기꺼이 우리를 위해 방을 내어주었다. 또한, 우리를 재워준 곳 모두 아침밥은 물론이고 점심밥까지 챙겨주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따뜻한 정 때문에 우리는 무사히 우리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고향을 떠난 지 56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의 제주 사람들의 정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그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감사하다. 사는 것이 쉽지 않아 고향 땅을 밟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가족과 함께 2019년 1월, 코로나가 오기 직전, 남제주군의 그 시골 마을을 가족들과 함께 찾았다.
안타깝게도 내가 상상했던 그 시골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곳은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시간과 그 장면이 내 마음속에 생생히 머물러 있었기에 그 변해버림에 마음이 쓸쓸했다.
1950년대 제주 사람들은 너무나도 가난했지만, 이웃에 대한 정을 아낌없이 나타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제주도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이웃 간에 그러한 따뜻한 정이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나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혹시 그때의 나와 내 어머니에게 사랑의 친절을 나타내 주신 분이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꼭 한번 찾아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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