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짜증 나는 일이 많다. 이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학원에 들어와서 공부하려 하면 표정에서부터 기분이 안 좋거나 짜증이 묻어있는 아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묻기도 전에 특정 사건을 말해주며 짜증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보통은 자기감정에 짓눌려 아무런 말 없이 가라앉은 기분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런데 종종 본인의 짜증을 공부로 옮기는 아이들이 있다.
하루는 경수가 기분이 가라앉은 채로 학원에 들어왔다. 어떤 일인지 물었지만, 다행히 큰 사건은 없어 보였고, 단순히 어제 친구들과 놀다가 다친 것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했다. 우리 학원은 아이들이 각자 헤드셋을 착용한 채로 공부를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한 번도 그러지 않았던 경수가 헤드셋을 쓰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헤드셋은 너무 머리를 쪼이는 것 같다!”
그러더니 그 옆 다른 헤드셋을 바꿔 착용했다. 그런데 1분이 지나지 않아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헤드셋은 너무 느슨해서 자꾸 흘러내려!”
그러더니 경수는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 헤드셋은 너무 머리를 쪼아 아프고요! 이 헤드셋은 너무 느슨해서 흘러내려요!”
사실 헤드셋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리는 1년이 넘도록 언제나 경수가 앉던 자리였고, 그 헤드셋 역시 언제나 경수가 착용하던 헤드셋이었다. 그 옆 헤드셋도 경수가 평소에 써봤던 헤드셋이었다. 경수는 그날 예민한 상태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짜증 난 상태가 공부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렇게 말해주었다.
“지금 선생님이 헤드셋과 관련해서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선생님이 볼 땐 네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거 같은데?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른 것들이 막 방해하거든. 공부를 하는 건 너니까 네가 선택해. 알겠지만 선생님은 강제로 하라고 하지 않을 거야. 물론 오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과의 진도는 조금 더 멀어지겠지만, 오늘의 휴식으로 내일 더 열심히 공부할 수도 있어.”
경수는 그날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졌는지 컨디션이 왜 안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집중했다.
가르치는 용기 2
43. 짜증을 공부로 옮기는 아이
(WANNA READ, 워너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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